소망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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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28(월) 17:01
칼럼
소망의 힘
문민용 논설위원
  • 입력 : 2020. 09.16(수) 16:38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리히터 박사가 긴 유리그릇에 쥐를 넣고 천천히 물을 부었다.
15분 정도 지나자 헤엄치는 것을 포기하고 죽음에 이르는 쥐가 생겼다. 하지만 어떤 쥐는 81시간을 버티기도 했다.
이번에는 쥐의 수염과 얼굴에 있는 털을 제거하고 같은 실험을 했더니 생존 시간이 현격히 줄었고 60시간 정도 버티는 쥐도 있었다.
세 번째는 덫에 걸린 야생 쥐를 잡아 실험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죽었다. 그런데 쥐들이 헤엄치며 안간힘을 쓸 때 밖으로 살짝 빼 잠깐의 자유를 주는 절차를 반복했더니 60시간을 버텨 냈다. 어떤 쥐도 15분 만에 포기하지 않았다.
야생 쥐는 덫에 걸린 데다 수염과 얼굴에 있는 털까지 잘리니까 피하거나 도망치거나 싸울 가능성도 찾지 못하는 지독한 절망에 빠져 삶을 포기하게 된 것이라고 리히터 박사는 설명한다. 그러나 잠깐 자유를 주어 소망을 불어 넣어 주었을 때 살기 위해 열심히 헤엄을 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망은 고난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고통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내리라는 것을 믿는 마음이다.
우리를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해 내는 것은 바로 소망이다.
소망은 우리 삶에 힘을 끌어내 주는 원천이며 동시에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깊은 뿌리와 같다.
믿음은 고난이 영원하지 않고 곧 회복된다는 것을 확신하는 마음이다. 소망이야말로 우리 삶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사람들 가운데는 소망을 잃었노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괜찮다. 소망의 불꽃은 다시 피어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시 한곳에 모아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진리를 따르면 새 힘을 얻고 소망을 되찾을 수 있다.
막연함 속에는 소망 없는 끝을 바라봐야 하지만, 진리와 함께하면 끝없는 소망 가운데 기뻐한다.
뒤엉켜져 있는 우리 삶을 맡길 수 있는 손길이 있다면 이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며 기쁨인가!
소망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최소한 어려움 때문에 포기해버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고 ‘절망은 죄’라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절망하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를 비참한 상태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절망은 재앙을 부르는 가장 나쁜 죄이며 두목이다.
절망하는 자에게는 미래도, 행복도 없고 웃음도 없다.
절망하는 자는 이 땅에 살지만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지옥이란 절망이 영원하며 꺼지지 않는 풀무 불 속에 죽지 못하는 버러지 같은 삶이 연속되는 곳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마음의 전염병은 ‘절망’이라고 말한다.
2차대전 중 헤롤드 럿셀이라는 공수부대원이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고 참혹한 좌절에 빠졌다. “나는 이제 쓸모없는 하나의 고깃덩어리가 되었구나.” 그렇게 절망에 빠져있던 그에게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이 더 많다는 진리의 마음을 누군가가 자각시켜 주기 시작했다.
의사는 그에게 의수를 만들어 주었고 그것으로 글을 쓰고 타이프도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절망을 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고 영화화되었다.
직접 불구자의 모습으로 출연하여 연기했고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제목의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탔다.
상금은 상이용사를 위해 기부했는데 기자가 찾아와 물었다.
“당신의 신체적인 조건이 절망케 하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육체적인 장애는 도리어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잃어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것을 생각하고 남은 것을 사용할 때 잃은 것의 열 배를 보상받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만 눈을 돌릴 때 그곳에는 절망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잃은 것을 넘어서 가진 것을 세어보면 더 많은 가능성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
쿠쉬너 소령은 미국인 군의관으로 1967년 월맹군의 포로가 되었다. 지독한 학대와 영양실조로 체중은 절반으로 줄고 수용소에 있는 동안 27명의 미군 중 10명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병사 중에 해병특공대 출신으로 억세고 이지적인 로버트라는 하사관이 있었다. 수수깡처럼 말랐지만 다른 포로들에 비해 눈은 빛나고 생기가 넘치고 중노동을 잘 견뎌냈다. 그것은 자유에 대한 희망 때문이었다. 교활한 월맹군 측은 포로들을 마음대로 부리기 위하여 말 잘 듣는 미군 포로 몇 명을 석방시켜 주었다. 그리고 다음번 석방자는 로버트라고 했다. 석방에 대한 희망이 로버트로 하여금 모든 육체적, 생물학적 한계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그런데 약속한 6개월이 되었지만 월맹군 측은 그를 석방시켜 주지 않았다. 1개월을 더 기다렸으나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고 월맹군 장교의 태도는 점점 냉담해졌다.
“다 틀렸구나!” 생각한 그는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그리고 얼마후 군의관에 품에 안겨 죽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으며 앞으로도 안될 것이라고 믿게 된 로버트. 그는 질병 때문이 아니고 절망 때문에 죽었다고 쿠쉬너 소령은 회고하고 있다.
하루 동안 우리 속에 일어나는 오만가지 생각 중에 90%가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한다.
그 부정적인 생각이 절망으로 끌고 갈 때 감사할 일을 찾으면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도 절망하지 않고 소망 안에서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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