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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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03(수) 16:56
칼럼
작은 연못
김요한 시인·목사
  • 입력 : 2021. 02.18(목) 16:38
동네입구에 아름드리 당산나무가 있고 그 옆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다.
이 당산나무와 연못은 마치 마을의 안내자처럼 마을 주민은 물론 이 까치마을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의 눈길을 끈다.
당산 나무는 팽나무로 300년이 되었다고도 500년이 되었다고도 하지만 정확한 나이를 아는 사람은 없다.
나무 아래 정자가 있어 마을주민들과 나그네를 사랑으로 품어 바라만 보아도 정감이 넘친다.
당산나무처럼 수선하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작은 연못에 눈이 오래가는 것은 연꽃이 내려다보여 잠시 세월을 잊게하기 때문이다.
그곳은 또한 개구리들의 천국이 되어 모내기철이면 소리를 높여 새벽농부들을 깨우지만 시끄럽다고 투정하는 사람도 없고 심보 사나운 돌을 던지는 사람도 없다.
그저 사랑의 찬가로 들을 뿐이다. 그러나 어느 날 조용하고 평화로워 천국 같던 연못에 침입자가 들어와 그날부터 연못의 고요는 사라지고 개구리들은 무서움에 떨어야 했다.
바로 황소개구리의 침범이었다.
사실은 덩치가 커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으로 알아 개구리들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다. 그러나 개구리들을 잡아먹어 포식하며 덩치를 키워갔고 마을 주민들이야 연못속의 속사정을 모르지만 개구리들은 쉼없는 공포 속에 모든 행복을 자신들도 모르게 잃어가게 되었다.
꼴 사나워 연못을 떠난 개구리들은 속좁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작은연못은 알게 모르게 야금야금 황소개구리 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 마리의 황소개구리가 천국 같던 작은 연못을 이렇게 파괴해갈 줄은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결국 작은 연못은 주인이 바뀌고 천국을 누리던 개구리들은 그저 생명의 위협속에 겨우 생명을 부지하며 살아갈 뿐이었다.
누군가 그 연못을 넉넉하고 평화로와 함께 행복을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은 연못에 비유했다. 처음엔 사랑인줄 알았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연못을 사유화하려 했다.
더구나 합법을 들이대며 입맛대로 제 욕심을 채워갈 때 누구도 쉽게 대적하려 않고 방관이 지혜라 여기며 탐욕자의 칼춤을 바라봐야만 했다.
수백년 나이 먹어 작은 연못을 휘하에 거스리던 당산나무도 사계절을 즐기며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러나 작은 연못의 포획과 황소개구리도 그 폭력이 영원할 수는 없었다.
이러다 연못을 망치겠다는 원성에 환경 단체가 들이닥쳐 황소개구리를 포획해 버린 것이다.
한순간 작은 연못에 평화가 찾아왔다.
호시탐탐 작은 연못을 엿보던 침입자들도 작은 연못을 탐욕을 채우는 자리로 바라보지 않고 평화속에 한몫 끼려면 어찌해야 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치 겨우내 혹한이 지나고 봄기운이 몰려 오는 듯 했다. 막힘이 뚫린 작은연못은 다시 평화를 찾고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들도 평화의 합창으로 들려질 기대에 마을 사람들도 들떠갔다.
어제의 역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라 했던가. 우리삶의 공동체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나를 위해, 나만을 위해 주위를 무차별 희생시키는 것이다.
적과의 동침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적이 없으면 결국 쇠약해져 자기홀로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 나를 보호하는 울타리는 걷히고 황량한 들판에 설 수밖에 없다.
이지경에서 아무리 자기 합리를 크게 외쳐도 세상과는 더욱 멀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코로나 19라는 괴물이 지구촌을 들쑤셔 놓고 있다.
지구촌에 현대 핵무기로도 격파할 수 없는 바이러스가 침입한 것이다. 백신도 치료제도 완전한 처방이 되지 못한다면 이에 맞서 모든 생활방식에 철저한 저항력을 길러야 한다.
이제 이 지구촌의 어려움을 한나라의 힘으로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생활면역 백신이다. 그것은 사랑이다. 작은연못에 어떤 침입자가 들이 닥쳐도 공동체가 오직 사랑으로 하게 된다면 능히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최근 많은 교훈들이 우리들에게 주어졌다. 결코 강건너 불이 아닌 나를 향한 깨달음의 재촉들이다.
작은연못을 함께 지키고 가꾸어가는 의지이면 지역도 작은 조직도 천국으로 변해갈 것이다.
그렇게 될것이 분명하다니 기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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