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로고는 한국의 사과

  • 즐겨찾기 추가
  • 2022.07.05(화) 17:25
칼럼
애플 로고는 한국의 사과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학평론가
  • 입력 : 2022. 05.17(화) 16:52
“먹는 것이 남는 것이다”라는 말의 유래는 우리 할머니도 모른다.
우리 할머니가 모르면 세상에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 답이라며 시도반(詩道伴. 시의 동행자)은 웃는다. 할머니에 대한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무한 신뢰를 의미하는 유머다운 말이다.
인류사에 먹는 것이 등장하는 것은 첫 번째로 아담과 이브다.
아담과 이브가 따먹은 사과(선악과)는 기독교 윤리의 헤브라이즘(헬레니즘(Hellenism)과 더불어 서양사상을 형성해온 기독교 사조(思潮))다.
유머 사이트에는 한국적인 사과가 등장한다. 그것은 “다섯 개의 사과 가운데 두 개를 먹으면 몇 개가 남느냐”는 산수 문제다. 역시 한국의 산수 교실은 먹는 것으로 수업을 한다. 하지만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한 개도 남지 않았다고 하는 아이다” “두 개를 먹었는데 어떻게 한 개도 남지 않을 수 있느냐”는 선생님의 추궁에 대해서 아이의 대답은 거침없이 말한다. “우리 할머니가 그러는데요. 먹는 게 남는 거래요.”
천지창조이래 가장 혁신적인 창조물은 애플의 휴대전화기라 해도 무리는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전화기에 딱 한 번쯤 베어 문 듯한 사과를 로고로 사용한 것은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시도반의 해석은 한국의 사과에서 그 유래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한 입 먹은 사과의 로고는 한국의 “먹는 것이 남는 것이다” 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설명인즉슨, 스티브 잡스는 휴대전화기를 출시하면서 안내서가 없었다. 구매 고객이 스스로 해득을 하며 사용하면 그 사람이 주인(먹는 사람이 임자)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고전적 이야기인 “먹는 것이 남는 것이다”라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을 한다. 스티브 잡스는 동양사상에 심취했으며 동양인의 시집을 가까이 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시도반은 스티브 잡스와 일면식도 없다. 만난 적도 없다.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추측은 세상 사람 누구나 할 수 있는 법적 판례도 있다.
여기에 시비를 거는 것은 시간 낭비다.
프랑스 미식가 장 앙텔므 브리야사바랭은 ‘미식 예찬’ 저서에서 “그대 무엇을 먹는지는 말하라. 그러면 나는 그대가 누군지 말해 보겠다”라고 했다. 바꾸어 말하면 지난주 누구와 어떤 음식을 먹는 행위는 그 내면을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먹는 것은 문명의 의미를 상징한다. 지구인의 관심 사항 중 하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과 문명론은 여기저기 헤아리기 어렵게 많다.
먹는 것을 단순하게 수리적인 것으로 해석이 아니다. 아이의 답변은 감성적인 실체로 드러난다.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인력 법칙의 사과, 종말론을 넘어서는 희망의 사과, 그런 것들은 모두 관념적인 죽은 사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그 사과는 직접 어금니로 씹어먹는 미각으로서의 사과다. 그것은 이미 타자(他者)로서의 사고가 아니다. 내 몸속에 들어와 나와 하나가 되어버린 사과이다. 인간에게 먹는 것은 최종 우리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과다. 뉴턴처럼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더 가까이 가면 그것을 주워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손가락으로 만지면 그 촉감을 느낄 수 있다.
어머니의 손맛도 다르지 않다.
손맛이라는 느낌의 감각은 이미 시각에서 청각으로 청각에서 후각으로 후각에서 촉각으로, 인간이 느끼는 원초적으로 거리를 좁혀진다. 이윽고 그것은 미각의 단계에서 완전 ‘제로’로 소멸이 된다.
우리나라는 지방에 따라 먹는 음식의 특징을 가진다. 서양에서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음식의 지방 특색이다. 먹는다는 것은 소통의 미디어가 되고 목구멍 식도는 생명의 우주로 통하는 정보의 회로가 된다. 최후 만찬의 먹는다는 것은 예수와 제자들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대화의 시간이었다. 최후의 만찬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을 보면 지극히 현실적이다. 빵과 포도주와 엎질러진 소금 그릇이 널려 있는 식탁은 지극히 사실적이고 일상적으로 보인다. 빵과 포도주는 극단적인 모순을 하나로 융합하는 강렬한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십자가는 혼자 져도 식사만은 함께한 예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먹는 것의 최종적인 의미를 생각한다.
한국인들에게는 최후의 만찬에 가장 가까운 한 솥의 공동체를 가졌다. 우리가 먹고 있는 설렁탕은 한 그릇, 별개로 만들지 않는다.
모두가 하나의 솥으로 끓여 먹는 한솥을 의미한다. 2004년에 충남의 괴산에서는 4만 군민이 먹을 수 있는 밥 40가마를 한 솥에 지을 수 있는 세상에서 제일 큰 45톤짜리 솥을 만들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
칼럼
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