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송이 장미를 든 사나이 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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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18(목) 18:01
칼럼
백만 송이 장미를 든 사나이 니코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학평론가
  • 입력 : 2022. 07.05(화) 16:50
장미꽃은 사람의 생사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광장의 작가 최인훈은 “장미를 빼고서 서양 문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달을 빼고 이태백을 말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시성(聖)이라 불린 릴케는 장미꽃을 꺾다 죽었다. 51세였다. 이집트에서 찾아온 여자 친구를 위하여 장미를 꺾다 가시에 찔러 패혈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장미여 놀라워라. 순백의 모순이여/ 무수히 많은 눈꺼풀이 내려앉아/ 잠이여 도대체 누구의 잠이란 말이냐”라는 장미꽃 찬미를 묘비에 남기기도 했다. 아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릴케는 시적인 죽음과 시적인 묘비라는 평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다.
러시아인은 세계에서 장미를 가장 사랑하는 민족으로 알려진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액수인, 연 13%를 꽃 선물에 소비한다. 꽃의 나라 영국인이 3.6%, 네덜란드인은 1.6%에 비하면 비중이 큰 편이다. 러시아인들은 집들이, 결혼식, 생일, 기념일 등에 자연스럽게 쓰인다. 러시아는 춥다. 꽃이 귀하다.
그래서일까, 러시아인의 90%가 ‘여성의 날’ 기념일에 남성의 50%가 꽃을 여성에게 선물 한다.
심수봉 가수가 부른 ‘백만 송이’라는 장미노래가 있다. 그 백만 송이 노래도 구소련하에 있던 나라, 조지아에서 있었던 러브스토리의 실화다. 조지아는 유럽대륙과 아시아 경계에 위치한다. 한국이 친근하게 여기는 터키와 가까이 있다. 만년설 아래 천혜의 자연경관이 살아 숨 쉬는 남 코카서스 지역으로 러시아명인 ‘그루지야’로 불렸다.
그 조지아의 작은 나라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니코 피로스마니아(Niko Pirosmani, 1862~1918)라는 청년이 살았다. 화가가 꿈이지만 그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다. 니코는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철도 노동자로 술집의 간판을 그리는 일로, 생계를 꾸린다. 직업을 바꾸어 호텔의 짐을 나르는 일에 종사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던 니코의 가슴으로 마르가리타가 들어왔다.
첫눈에 반했다. 그녀는 삼류 악단에 노래하고 춤을 추는 프랑스 국적의 배우였다. 마르가리타는 미모 덕에 늘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도도했다. 그런 배우에게 가난한 환쟁이 니코가 눈에 찰리가 없었다.
마르가리타가 생일을 맞았다. 니코는 조지아의 청년답게 생일 이벤트를 준비했다. 그가 장미를 좋아한다는 정보도 알아냈다. 100만 송이 장미를 준비한 것이다. 당시 조지아에는 100만 송이의 장미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백만 송이 장미는 무려 트럭 100대 분량이다.
거기에 니코에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다. 니코는 자그마한 집을 처분했다. 부족한 돈은 지인을 통하여 융통했다. 그래도 부족한 돈은 매혈(賣血)로 충당했다.
니코는 마르가리타 생일에 그녀가 머무는 호텔의 방문 앞을 시작으로 광장에 이르기까지 장미로 수를 놓았다.
마르가리타가 이른 새벽, 창문을 열자 장미 향기가 창문으로 밀려왔다. 광장은 온통 붉은 장미였다. 마르카 타의 마음은 잠시 니코에 머물렀다. 니코는 마르가리타의 공연이 끝나길 기다렸다.
하지만 마르가리타는 호텔을 들리지 않고 순회공연을 위하여 조지아를 떠났다.
니코는 떠난 사랑에 말없이 장미를 치워야 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일에 매진했다. 니코는 그 누구에게도 그림을 사사 받은 일이 없었다. 틀에 박히지 않는 화가의 길을 열었다. 쉰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곁을 지킨 이는 없었다.
그의 마지막은 영화 ‘아마데우스’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킨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음산한 겨울날 몇 명의 인부가 수레에 싣고 온 시체를 구덩이에 던져넣고 횟가루가 섞인 흙으로 구덩이를 덮었다. 당대 기득권으로 똘똘 뭉친 미술계에서 조롱과 멸시에 시달리던 한 천재 화가는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음으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떠났다. 니코가 남긴 그림은 3천점이 넘었다. 하지만 남아 있는 그림은 300여 점으로 알려진다. 사후에 니코는 조지아의 국민화가로 평가를 받는다. 조지아의 화폐에 니코의 얼굴이 오르고 그림이 전시되는 박물관도 건립되었다. 러시아 시인 안드레이 보네센스키Andrey Voznesensky, 1933~ 2010)가 쓴 시에 알라 푸가체바가 부른 백만 송이 장미는 러시아는 물론 세계인이 널리 사랑받는 노래가 되었다. ‘옛날 옛적에 가난한 화가가 살았네/ 그는 집과 캔버스를 갖고 있었지/ 화가는 한 배우에게 푹 바져 버렸다네/ 그러나 그녀는 오직 꽃만 사랑했다네/ 그래서 화가는 집도 그림도 모두 팔았네/ 화가는 집과 그림을 판 모든 돈으로/ 온 세상 꽃을 모두 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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