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만에 오월영령 앞에선 옛 군인의 후회

아내와 5·18민주묘지 찾아… 방명록에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적어

편집팀 tdh1234@naver.com
2014년 05월 14일(수) 18:49
“광주 시민들 정말 폭도라고 믿었다… 가슴 아프고 유가족 등에 죄송”
지난 12일 오후 중년의 한 남성이 아내의 손을 잡고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민주의 문을 들어섰다.
민주의문 한 편에 마련된 방명록 앞에 선 그는 잠시 망설인 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라고 적었다.
포항에서 온 정기현(가명)씨는 “(나를)괴롭히던 죄의식을 씻기 위해 34년만에 처음으로 5·18민주묘지를 찾았다”고 고백했다.
정씨는 1980년 5월 상무대 헌병대에서 중사로 근무하고 있었다며 80년 5월의 그날을 회상했다.
정씨는 계엄군들에게 붙잡혀 온 전남대 학생들과 시민군들을 광주 교도소에서 옛 상무대 법정까지 이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당시 군인 신분이었던 그는 광주 시민들이 정말로 폭도라고 믿었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군부의 지휘 아래 폭도들을 진압하기 위해 동원됐다”며 “그 때는 정말 폭도인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민주화운동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2년 뒤 정씨는 서울 수도경비사령부로 전출됐지만 전두환 군부 정권에 회의감을 느껴 곧바로 군복을 벗었다.
정씨는 “(5·18은)신군부의 전두환이 정권을 잡기 위한 수단이었다”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가슴이 아프고 착잡하다”고 심경을 전했다.
이어 “후회되고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며 “5·18 공동체 의식과 가치를 기려야 한다. 앞으로 다시는 절대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오월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묘지를 참배한 뒤 5·18민주묘지를 나설 때도 그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정씨는 “처가가 광주”라고 말했다.
정씨는 80년 5월, 폭도라 믿고 광주 시민들을 옭아맸던 손으로 아내의 손을 붙잡고 후회스럽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듯 했다.
이에 대해 정현종 국립5·18민주묘지 관리사무소장(56)은 14일 “민주화운동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을 것”이라며 “누구든지 국립묘지를 찾아 5·18의 의미를 느낀다면 국민화합과 바른 역사관에 기여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3일 기준 올해 국립5·18민주묘지 참배객 수는 13만3429명으로 집계됐다. 5월 들어 현재까지는 2만5147명이 다녀갔다.
/하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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