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모든 것을 파괴했다”

학도병 김오년 씨 “60년 지나도 악몽 여전…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돼”

편집팀 tdh1234@naver.com
2014년 06월 24일(화) 18:14
“전쟁은 언제나 비극으로 끝나기 때문에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김오년(83)씨. 김씨는 6·25를 하루 앞둔 4일 오전 64년 전 그 날을 회상하며 눈을 감았다.
6·25전쟁으로 친동생을 잃은 그에게 전쟁은 하루아침에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 쳐야만 했던 공포 그 자체였다. 피붙이와 동지를 잃은 전쟁의 상처는 60년이 지난 지금도 아물지 않고 있다. 여전히 그날의 악몽이 김씨를 괴롭히고 있다.
그는 전쟁 당시 빗발치는 총탄에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고 교전이 끝난 뒤에는 황폐한 현장을 보면서 며칠 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씨는 “휘황찬란했던 경주 시내가 남강전투를 마치고 돌아올 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며 “무너진 건물 사이에 죽어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전쟁의 참혹함을 절실히 느꼈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쟁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10대의 끝자락을 전쟁터에서 보낸 김씨는 계속된 전쟁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김씨는 1950년 7월부터 일본제 사사식 소총과 수류탄 하나를 가지고 경상도 지역에서 매일 전투현장에 뛰어 들었고 계룡산 토벌작전에도 한 달 동안 참전했다.
북한군 2개 연대가 마산을 기습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제 친구였던 전우가 오늘 죽는 광경을 보면서 내가 안 쏘면 죽는다는 현실이 고통스러웠다”며 “북한군에게 총을 겨눌 때 밀려오는 공포감은 형용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최근에도 1952년 1월 금화지구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자신의 동생을 떠올리곤 한다.
김씨의 동생은 1951년 2월,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이듬해 18살의 꽃다운 나이로 전쟁터에서 숨을 거뒀다. 동생의 사망통지서를 받은 가족들은 며칠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크게 소리 내 울지조차 못했다. 같은 동네, 한 집 건너 한 집이 모두 초상집이었기 때문이었다.
‘왜 말리지 못했을까’, ‘왜 붙잡지 못했나’, ‘더 잘해줄 것을’, 슬픔과 후회, 미안한 마음이 지금도 김씨의 가슴을 죄고 있다.
김씨는 “서로가 서로에게 겨눈 총구는 한 가족의 삶을 찢어놓는다”며 “민족의 공존을 위해서 내 친구와 가족이 전쟁으로 희생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후세대에 당부의 말을 전했다.
김씨는 “참전용사들의 정신을 기리는 것은 전쟁이 재발하지 않게 노력하는 것”이라며 “한민족이 공존하기 위해서 평화와 통일에 힘써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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