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언덕’은 첫 키스처럼 새로운 경험”

문소리 “작품하면서 배우와 스태프와 감독 간의 교감 느껴”
“슬프고·외롭고·쓸쓸하면서도 아름답고 감동적인 영화”

편집팀 tdh1234@naver.com
2014년 09월 21일(일) 17:38

영화배우 문소리(40)를 만난 곳은 삼청동 게스트 하우스의 조용한 방이었다. 한 쪽 창밖으로 고즈넉한 한옥이 내려다보이고 다른 쪽 창 밖으론 골목길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주변은 적막해 얕은 숨소리까지 증폭되면서 분위기가 야릇했다. 문소리는 “뭔가 색다르죠?”라고 물었다. 그렇다. 이런 곳에선 좀체로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영화 ‘자유의 언덕’(감독 홍상수)의 남자주인공 ‘모리’(카세 료)는 삼청동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며칠을 묵는다. 깡마른 몸에 헐렁한 티셔츠와 바지를 걸치고 ‘시간’이라는 제목의 책을 들고, 신발을 끌며 ‘권’(서영화)을 기다린다. 영화는 시간을 뒤죽박죽 섞어놓아 뭔가 벌어질 듯하면서도 시종일관 고요하고 쓸쓸하고 따뜻하다.
문소리를 만난 곳은 영화 속 ‘모리’의 게스트 하우스와 다른 곳이지만 분위기는 고스란히 이어졌다. 그 때문에 인터뷰장소로 이곳을 골랐을 것이다.
밀도높은 영화인 ‘자유의 언덕’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여럿 있다. 그래도 가장 마음을 흔드는 신을 꼽으라면 ‘영선’(문소리)의 집 화장실에 갇힌 ‘모리’가 멍하게 창밖을 응시하는 장면이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객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슬프고, 외롭고, 쓸쓸하면서도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이렇게 스크린에 배어 흘러넘치는 정서가 영화 속 인물들을 하나 하나 휘감고 있다.
“슬프더라고요. 근데 그게 마음이 아픈 게 아니에요. 따뜻한데 슬펐어요.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쓸쓸해하고. 뭐 이런 것에 대해 다시 생각했어요. 만남과 헤어짐,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시간이라는 인과관계 때문에 어떤 논리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렇더라고요. 논리를 만들려는 의지를 빼고 순간만 보면 어떻게 보일지 생각했어요. 순간순간은 참 아름다운 것인데…. 괜히 눈물이 나더라고요.”
문소리는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며 “‘자유의 언덕’은 홍상수 영화 중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하하하’를 찍을 때는 그냥 신나서 촬영했는데 이번에는 느낌이 너무도 달랐다”는 것이다. “촬영 환경은 차분했는데 감정에 동요가 있었어요.”
촬영 중간에 문소리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느낌이 이상했다”고 한다. 문소리는 “바이오 리듬의 문제라고 간단하게 정리”하고 촬영했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고나니 “그때의 감정이 컨디션의 문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에 푹 빠져서 연기했다. 오래간만에 느낀 감정이었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뭔가를 얻어가는 것 같지는 않아요. 사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죠.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영화와 연기, 제 개인적인 것까지 정말 많은 생각을 했어요. 흔치 않은 경험이죠. 사람은 욕심이 있잖아요. 물론 카세(카세 료)의 영향도 있었어요. 홍상수의 세계에 푹 빠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연기하더라고요. (그 때문에)저도 자연스럽게 연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거죠. 대화가 잘 통하지는 않지만 알겠더라고요. 작품에 대한 헌신, 배우와 스태프와 감독 간의 교감. 이런 경험은 정말 흔치 않아요. 이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어요.”
문소리는 솔직하게 말했다. “늘 연기에 집중하려고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때도 있다. 함께 연기하는 배우와 호흡이 잘 맞지 않기도 하고 작품 자체와 어우러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의 언덕’은 더욱 소중하다.”
홍상수 감독은 ‘자유의 언덕’을 시간 순서대로 촬영했다. 그리고 편집 과정에서 시간을 뒤섞었다. 규칙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평론가나 관객은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려 한다. 하지만 문소리는 간단하게 정리했다. “아름답다.”
“자연스럽게 드라마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는 2007년 ‘태왕사신기’에서 드라마 연기를 처음 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김종학 PD의 작품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고 그때를 다시 생각해보니 ‘꼭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자유의 언덕’의 모리도 후회한다. 그리고 상처를 입는다. 꿈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지만 먼 미래를 생각하기도 한다. ‘자유의 언덕’은 문소리에게 시간을 생각하게 했고, 과거를 돌아보게 했고, 연기와 영화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그에게 “‘자유의 언덕’은 남다르다.”
그는 “이제는 나의 현재를 감사하게 여기고 싶다”며 “‘나의 연기’를 강조하기 보다는 작품 속에서 ‘그저 잘 쓰이는’ 존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소리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기 보다 오히려 명확하지 않은 배우가 되는 게 목표라면 목표”라고 말을 이었다.
“‘자유의 언덕’은 첫 키스를 떠올리게 해요. 저한테 첫 키스는 실제로 온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로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이 영화는 제게 처음 연기할 때의 그 감정을 고스란히 되살려줬어요. 두 번째 첫 키스 같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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