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해도 인신매매… 배고파 인분 뒤지기도”

탈북여성 인권 실태 고발… “북 주민들 독재체제의 희생양으로 죽어가고 있다”

편집팀 tdh1234@naver.com
2015년 03월 03일(화) 16:49
#1. 김은미(33)씨는 북한 군수공장에서 가족들과 9년간 일했다. 김씨 가족에게 주어진 것은 젖은 옥수수와 쌀 몇 그램이 전부. 동생은 영양실조에 걸렸고 식구 모두 목숨을 유지할 수 없었다. 가족들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2006년 살을 에는 두만강 물에 몸을 던졌다. 하지만 김씨를 기다린 것은 인신매매였다. 하룻밤에 남자 4~5명을 상대해야했다. 도망치다가 붙잡혀 뭇매를 맞았다. 소리를 지르면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떠보니 죽은 줄 알았는지 이불에 쌓은 채 구석에 버려놓은 상태였다.
#2. 북한에서는 먹을 것을 찾아 거주지 없이 떠도는 아이를 꽃제비라 부른다. 송경옥(28)씨는 어릴 적 부모가 간첩으로 몰려 끌려간 뒤로는 꽃제비로 살았다. 어린 형제들과 나이 든 할머니만 남았기 때문이다. 배가 너무 고파 개똥에 섞여있는 강냉이 알을 집어 먹었고 인분을 강물에 씻어 알갱이를 찾기도 했다. 결국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갔다. 하지만 키가 작고 볼품이 없다는 이유로 매매혼이 아닌 식당으로 팔려갔다. 식당에서는 먹을 걸 주지않아 매일 밤 기름만 한 병씩 퍼먹었다.
#3. 북한군 특수부대 간호사관으로 일했던 안혜경(39)씨. 17살에 입대한 뒤부터 여군들이 성적 노예가 되는 걸 지켜봐야 했다. 당원이 되기 위해 상사에 몸을 줄 수밖에 없었다. 당원이 못되면 군대에서 크게 잘못한 것으로 여겨졌다. 친구도 당원이 되기 위해 입대했다가 선전 부장 아이를 가졌다. 군인들이 강제로 낙태를 시키고 폭행했다. 손바닥만한 빨간 당원증이 뭐라고 이렇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면서 군복무를 해야하나 싶었다. 이후 제대한 안씨는 큰 병원의 수간호사라는 좋은 직업을 얻었다. 하지만 직접 본 인권 유린 실태는 잊혀지지 않아 2006년 탈북했다.
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는 탈북 여성 40여명이 전하는 북한에서의 인권 침해 사례와 탈북 과정에서 겪은 인신매매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있었다.
뉴코리아여성연합은 이날 ‘3월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의 인권탄압 가해자를 처벌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살길을 열어주는 인권법이 하루 빨리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호소문을 통해 “북한 정권도 3월8일을 여성의 날로 지정해놓았지만 북한 여성들의 인권 실태는 세계 최악의 상황”이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힘없는 여성들은 북한 독재체제의 희생양으로 신음하며 죽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정은 정권과 그 추종세력들은 하루 빨리 세계 인권선언의 조항들을 준수하고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사회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며 “북한 당국은 그들의 행동이 반인륜적인 행위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 세계적인 공조와 협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뉴코리아여성연합 이소연 대표는 “대한민국에 입국한 탈북자 수가 2만7000명을 넘었고 이 중에 80%가 여성”이라며 “대한민국 사회와 여성단체들이 누구보다 북한 인권개선과 북한 여성들의 인권실현을 위해 적극 나서줄 것을 간곡히 희망한다”고 밝혔다.
/황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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