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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24(금) 10:45
누가 애국가(愛國歌)를 흔드는가?
  • 입력 :
누가 애국가(愛國歌)를 흔드는가?

김철수 아동문학가·美솔로몬대학교한국학장

편집팀 tdh1234@naver.com
2020년 07월 05일(일) 16:57


올해로 6·25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았다. 한 나라를 상징하는 국가적 차원의 공식적인 노래를 국가(國歌)라고 부르며, 공식, 비공식 여부를 떠나 나라를 사랑하는 내용을 담아 온 국민들이 공식적인 행사나 또는 즐겨 부르는 노래를 애국가(愛國歌) 라고 말한다.
대체적으로 애국가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 국가로 제정된 애국가는 나라를 상징하는 의식음악의 핵심구실을 하게 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의 가사로 된 지금의 애국가는 일제 강점기 시절 중국에 세워진 상해임시정부시절부터 불러 온 것을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 공식적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 후 국가행사나 학교, 사회, 문화단체 등에서 나라의 의식행사로 맨 먼저 부르며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런데 요즘 항간에서는 애국가를 새로 짓자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그 이유로 작곡자인 안익태가 친일과 나치독일에 협력했다는 흔적이 드러났기 때문이란다.
또한 작사자도 친일인사인 윤치호로 보고 작곡자와 작사자 모두가 친일파임이 친일 인명사전에 올라있기 때문에 애국가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애국가의 작사자는 친일인사인 윤치호가 아닌 순국 애국자인 도산 안창호라는 주장이 더 유력하다.
1955년 정부는 애국자 작사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통보해달라는 미국 대사관의 요청을 받고 작사자는 안창호, 작곡자는 안익태라고 통보하려다 이 사실을 먼저 언론에 흘렸다.
당시 애국가의 작사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정부는 국사편찬위원회 산하 애국가작사자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사토록 했다.
그러나 애국가작사자조사위원회 위원가운데 절반이상이 과거 친일인사였다.
조사 결과 안창호, 윤치호, 최병헌, 김안식, 민영환 등 5명이 애국가 작사와 관계있는 사람이라고 보고했지만 그 누구도 결정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정부는 애국가 작사자를 공식적으로 ‘작사자 미상’으로 발표하여 70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에 대해 애국가 작사자 규명활동을 펴 온 흥사단이 2회에 걸쳐, 그리고 서울신학대학교가 1회, 명지대학교가 1회 등 총 4회에 걸쳐 애국가 작사자 규명토론회를 국회도서관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실에서 가진바 있다.
이 자리에서 열띤 토론 속에 흥사단을 이끌어 온 도산 안창호 선생이 문헌과 증언, 여러 가지 증거와 여러 인사들의 구두 증언으로 애국가 작사자로 가장 유력하다는 우세한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지난 해 봄 역사학자인 서울대 신용하 명예교수는 도산 안창호가 지은 창가가사 20여 편의 내용과 표현을 현재의 애국가 가사와 비교해보니 애국 사상과 표현이 애국가와 거의 일치함을 보여 애국가 작사자는 도산 안창호라고 결론지었다.
또한 씨알의소리연구소 박재순 소장은 함석헌 사상과 뿌리 연구를 하면서 도산 안창호의 인격과 애국사상도 함께 연구했는데 지도력이 남달리 출중했던 도산의 인격과 사상을 역사적 맥락에서 짚어볼 때 애국가는 도산 안창호가 작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애국가 작사자 규명을 위해 2014년 1월 미국 LA에 건너간 안민석 국회의원은 도산 안창호의 장녀인 안수산을 만나 아버지 도산 안창호가 애국가를 지었다는 말을 어려서부터 많이 들었다는 증언도 들었다.
도산 안창호가 1907년 2월20일 미국에서 귀국하여 신천예배당에서 예배에 참석했다가 시상을 얻어 평양에 가서 사계절을 배경으로 지은 애국가를 지었는데 이는 역사주의, 형식주의, 문학비평 방법에 의해 평가해볼 수 있다.
1절에는 하느님 사상, 2절에는 독야청청의 사육신 성상문의 순국사상, 3절에는 포은 정몽주의 일편단심 순국사상을 핵심사상으로 깔고 4절에 불변의 소나무 기상과 가을밤 밝은 달의 일편단심 마음으로 우리겨레는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사랑하자고, 안창호의 나라사랑과 순국사상으로 창작된 것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오늘날 보수와 진보를 초월하여 나라 안 밖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가 1902년 미국으로 유학을 갔으나 교포들의 교육을 위해 자신의 유학을 포기하고 노동판에 뛰어들어 교포들을 위해 공립협회, 국민회 등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국내에는 신민회, 해외에는 흥사단을 조직하여 나라를 위해 애쓴 그의 한 평생은 우리 겨레의 영원한 나침판이었다.
올해로 도산 안창호 선생의 탄신 142주년이며 서거 82주년이자 광복 75주년, 그리고 정부수립 70주년을 맞아 뒤늦은 감이 있으나 정부는 애국가 작사자를 도산 안창호로 공인하고 공식 국가로 지정해서 온 국민이 부르도록 해주길 바란다.
편집팀 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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