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천백년의 역사 향기가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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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예산, 천백년의 역사 향기가 가득
  • 입력 : 2021. 05.12(수) 17:19
예당호
예당호는 겨울철 얼음낚시외에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계속 낚시할 수 있다. 주로 붕어, 잉어를 비롯해 뱀장어, 가물치, 동자개, 미꾸라지등 민물에 사는 물고기 대부분이 있다. 1986년 국민관광지로 지정, 개발되어 다양한 휴양지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개인좌대, 덕,배좌대 등 100여 개가 전지역에 분포되어 있어 언제든지 빌려서 사용할 수 있다. 주변장소로 수덕사, 충의사, 덕산온천, 덕숭산, 임존성등이 있어 더욱 인기가 있다.

가야산
신라때는 가야산사를 짓고 나라에서 제사를 지냈으며 조선시대까지도 덕산현감이 봄, 가을로 제를 올렸던 곳으로, 능선을 따라 피어있는 진달래와 억새풀은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높이 600m급의 산으로는 놀라운 고도감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내륙의 산과는 달리 바다가 가까운 곳으로 상대적 해발 높이가 높기 때문이다.

덕산온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덕산 현조(德山 顯條)에『온천재현 남오리(溫泉在縣 南五里)』라 적혀 있으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충청도(忠淸道) 덕산현조(德山顯條)에도 온천재현 남삼리(溫泉在縣 南三里) 윤일문 이라는 기록이 있어 온천이 알려진 역사는 500~600년전부터 이며 조선시대의 유학자 이율곡선생의 저서인 『충보』에 의하면 ‘학 한 마리가 이곳의 논 한가운데서 날아갈줄 모르고 서 있기에 동네 주민들이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날개와 다리에 상처를 입고서 논의 물을 열심히 상처에 찍어 바르고 있는 것이다.

삽교평야
삽교천을 따라 길게 펼쳐진 평탄지가 조성된 곳으로 삽교읍 용동리, 성리, 고덕면 용리, 구만리, 상장리, 대천리까지 길게 펼쳐져 있어 삽교 꽃산 봉우리에서 내려다 보이는 이른 가을 아침 햇살에 비치는 넓은 삽교평야는 마치 출렁이는 황금물결과 같아 장관을 이룬다.

수덕사
백제사찰인 수덕사는 백제 위덕왕(554~597) 재위시에 창건된 것으로 학계에서 추정하고 있으며 또한 수덕사 경내 옛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와당은 백제시대 창건설을 방증하고 있다. 백제 무왕때도 (600~641년) 혜현법사가 강론하고 고려 공민왕때 나옹화상이 중건하였다하며 조선시대 고종 2년(1865년)에 만공선사가 중창하여 우리나라 선종의 수도장으로 유명하다.

예산사과
우리군의 사과면적은 1995년도 2,184ha로 가장많이 재배하였으나 현재는 1,190ha 949농가가 재배하고 있으며 2009년부터 새로운 품종인 엔비와 속빨간사과 도입.재배로 전국에서 제일가는 선진사과단지를 조성하여 예산사과 명맥을 널리 떨치고 있다.

추사고택
안채에는 6칸 대청과 두칸의 안방과 건넌방이 있고, 부엌과 안대문, 협문 광등을 갖춘 ‘ㅁ’자형 가옥이다. 안방과 건넌방에는 각각 툇마루가 있고 부엌 천장은 다락으로 되어 있으며 안방과 건넌방 사이의 대청은 그리 흔하지 않은 규모이다. 이러한 ‘ㅁ’자형 가옥은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이른바대갓집」형이다.

예산황새공원
예산황새공원은 자연환경 훼손으로 절멸되었던 천연기념물 제199호 황새의 성공적인 복원과 한반도 야생복귀를 위해 2009년 문화재청의 황새마을조성 공모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어 2014년 전국 최초로 조성되었다. 예산군에서는 황새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친환경농업 실천 등 서식지 조성에 노력하고 있으며 이곳 예산황새공원에 방문하면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실제 황새를 직접 만나볼 수 있다. 황새문화관 내 상주하고 있는 생태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 이곳이 얼마나 가치 있는 곳인지 알 수 있으니 꼭 해설을 들어보자.

임존성
성벽의 높이는 약 250~350㎝이며 너비는 약 350㎝인데 남쪽의 성벽외면은 석축으로 되었으나 내면은 토석 혼축으로 내탁을 하였다. 남쪽 성벽에 수구를 설치하고 있으며 이곳 수구로 성내 물을 유도하기 위하여 깊이 90㎝, 폭 60㎝의 도랑이 있다. 그 위에는 넓적한 판석을 덮고 있으며 수구의 크기는 폭 70㎝, 높이가 30㎝이다. 이 성의 특징은 네 모서리에 축조를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다른 곳보다 약 2m정도 더 두텁게 내탁하였으며 성의 높이도 약간 더 높게 축조되었다.

충의사
윤봉길의사는 순종 융희 2년(1908) 6월 21일 도중도 생가에서 윤황공의 장남으로 태어나 15세때에는 학력이 뛰어나 천재소리를 들었으며 19세때인 1926년에는 야학회를 창설하여 문맹퇴치에 힘쓰시고 1927년 농민독본을 집필하시고 독서회를 조직했다.
1930년 3월 6일 “장부출가 생불환”이란 비장한 유서를 남기고 망명길에 올라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 천장절 상해사변 전승축하 식장을 폭파하는 대의거 거사후 1932년 12월 19일 25세를 일기로 순국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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