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가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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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13(목) 16:29
칼럼
은유가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고요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 입력 : 2024. 06.11(화) 16:58
은유는 시에서 보석 상자로 여긴다. 메타포(Metaphor)는 시인에게 공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람의 일상은 은유의 표현이 많다. 시에서 은유는 진주처럼 반짝일 때 은유의 사명을 다한다. 프랑시스 퐁주(Francis Ponge 1899~1988)는 은유에 대하여 남다르게 고민을 한 시인이다. 첫 시집으로 낸 <사물의 편>만 보아도 은유의 냄새가 물신 거리다. 그의 저서들을 살피면 <표현의 광란>, <물컵>, <말레르브를 위하여>, <비누> 등이 그러한 경향을 보인다.
퐁주는 물에 관하여 공부를 한다. 3개월 동안 물을 컵에 담아두고 관찰한다. 빵을 3개월 동안 본다. 그가 시집으로 나온 사물들을 대함은 스치는 것이 아니라 3개월 동안을 집중적으로 눈으로 깊이를 본다. 로댕이 조각작품을 위하여 돌의 표층(表層)을 눈으로 재는 것과 같다. 퐁주는 물의 관찰에 대하여 “나보다 더 낮게, 언제나 나보다 더 낮게 물이 있다. 언제나 나는 눈을 내리깔아야 물을 본다. 땅바닥처럼, 땅의 한 부분처럼, 변형된 땅처럼, 물은 희고 반짝이며, 무정형이고 신선하다. 물이 한 가지 고집스럽게 버리지 못한 게 있다면 그것은 중력. 그 고집을 못 버려 물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감아 돌고 꿰뚫고 잠식하고 침투한다. 그 내면에서도 그 고집은 또한 작용하여 물은 끊임없이 무너지고, 매 순간 형태를 버리고, 오로지 낮은 자세로 수도사처럼 시체처럼 땅바닥에 배를 깔고 넙죽 엎드린다. 언제나 더욱더 낮게, 이것이 물의 좌우명이다”라고 보았다. 누구나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것을 모른 이 없다. 어떻게 보는가의 은유가 다를 뿐이다. 퐁주는 빵, 불, 테이블, 성냥과 같은 사물에 대하여 물의 예처럼 심각하게 살펴보는 은유의 고민을 하였다.
은유란 이렇게 시인에게 보석처럼 사용되기도 하지만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 1941~)는 미국의 전쟁 서사에서 “은유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라는 섬뜩한 현실을 폭로한 것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미국은 약자를 구원하는 영웅으로, 이슬람국가는 악마 화하는 식으로 은유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역사와 정치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은유적 표현이 대립으로 사용된다고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그는 어려운 접근으로 “한때 인류의 진화에 대한 과거 인류학자의 상상력도 은유적 개념에 근거했다”라며 미국의 인류학자 루이스 모건 <고대사회>에서 저서를 표본으로 삼았다.
시인은 모름지기 은유를 보석, 진주로 일컫는 것이 당연시하지만 인류학자에 은유는 대립의 시대적 관찰이 된다는 점이 다소 의외로 읽히기도 한다.
언어는 우주 안에 흩어진 채 존재하는 ‘있음’들을 불러 이름을 주고 그것에 존재 실존적 은유의 옷을 입혀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이라 한다. (권일송 시인) ‘말함’이 ‘밝힘의 기획투사’라 한다. (하이데거 철학자) 언어는 때로는 투명하거나 화살과 같다. 때로는 투명하다가도 불투명한 것이 언어다. 시에서 ‘괴롭다’는 것은 그 괴로움의 단층을 허물어 내는 일이다. 허물지 못하면 어렴풋하게 모호성이라도 건네주는 것이 괴로움을 해석하는 시의 사명이다. 다시 부연하면 진흙탕이라는 언어 표현도 실제 없이 중심이 텅 빈 기호의 묶음일 때 시에서는 그 역할을 하게 된다.
결론으로 부엌에서 쓰는 도구가 부엌 밖에서는 다른 용도의 불협화음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러듯 같은 은유를 사용하는 학자에 따라 언어의 범위는 한 층의 모습으로 달라진다.
하이데거는 “죽음과 언어 사이의 본질적인 관계가 섬광처럼 빛나건만, 그것은 아직 사유 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라고 말한다. 그 언어는 시인, 인류학자가 어떻게 사용되거나 연관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언어가 명명하는 존재하는 낱말로 가져다 사용하는 자의 것으로 명명한다. 모름지기 은유를 부엌에서 쓰면 요리가 되고 인류학자가 문화적 시대의 서사적 관점으로 사용하면 통치적 은유나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보석은 거룩한 손, 목걸이가 될 때 보석의 역할이 된다.
은유라는 언어도 시에서 직관과 예감, 사유, 기미들을 품고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할 때 형상의 대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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