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연작 모두 성공…“슬럼프, 자신과의 대화 통해 타협”
동그란 안경과 모자가 수수하다. 박시한 티셔츠는 꾸미지 않은 듯하면서도 멋스럽게 느껴진다. 유인나(32)는 TV 속 연예인의 화려함을 벗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드라마 속 여배우의 삶처럼 살지는 않아요. 저는 관심 받는 직업을 가진 똑같은 여자일 뿐이에요. 고충도 있고 좋은 점도 있고, 감정변화도 겪고요. 일하지 않는 동안은 친구를 만나거나, 집안일을 해요. 잠옷을 입고 세수도 안 하고 책도 읽으면서요. 매우 실망스러울 정도로 평범하게 살고 있죠.”
MBC TV ‘최고의 사랑’, tvN ‘인현왕후의 남자’에 이어 최근 종방한 SBS TV ‘별에서 온 그대’까지 드라마에서조차 연예인의 삶을 산 그녀다. 화려할 것 같은 삶은 평범 그 자체였다. “‘실장님 전문배우’처럼 나도 연예인 역할을 많이 해서 비슷한 역할에 찾아주나 보다”며 웃었다.
유인나는 ‘별에서 온 그대’에서 오래된 친구인 톱스타 ‘천송이’(전지현)에게 열등감을 지닌 아역탤런트 출신 탤런트 ‘유세미’를 연기했다. 15년 동안 짝사랑해 온 ‘이휘경’(박해진)이 천송이만을 바라보자 질투심에 휩싸이게 된다. 결국, 위기를 맞은 천송이가 모든 배역에서 하차하자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가게 된다.
“감독님께서 유인나만의 발랄함과 사랑스러움을 쫙 뺐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또 착한 사람인지 못된 사람인지 알 수 없게 연기하라고 하셨고요. 나중에 본성을 드러내면서 얄미워지게 됐죠”라고 털어놓았다.
“원래 현장에서 굉장히 밝고 잘 어울리는 편인데 ‘유세미’ 때문에 이번 현장은 그러지 못했어요. 감정을 유지해야 했거든요. 송이는 굉장히 밝고 세미는 굉장히 어둡잖아요. (전)지현 언니께도 살갑게 많이 말하고 싶었는데 제가 너무 밝으면 언니가 몰입이 안 될 수도 있어 조용히 있었어요. 아쉬웠죠.”
그러다 보니 촬영장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외로웠어요”라고 울상을 짓자 눈썹이 축 처진다. “드라마에서 세미는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 친구도 사랑도 다 잃고 많이 외로웠다. 딱하고 안쓰럽기도 했고…”라는 고백이다.
사랑에서도 그랬다. “세미가 휘경이를 정말 사랑했다면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스스로 사랑을 망쳤다. 송이가 도민준(김수현)을 사랑한다는 걸 휘경이에게 흘리는 행동이 잘못됐다. 휘경에게 도민준에 대한 힌트를 준 것이다. 휘경의 입장에서는 송이에 대한 간절함과 조급함만 더 생기지 더더욱 세미를 안 봐줬을 거다. 바보 같은 계산이었다. 연애의 기술이 없었던 것 같다”며 혀를 끌끌 찼다.
친구에게도 마찬가지다. “내 삶의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게 친구다. 인생을 영원히 같이할 수 있는 존재인 친구와의 관계를 망쳤다. 천송이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바보 같았다. 천송이가 톱인걸 인정하고 자기가 2등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세미 뒤에는 3등, 4등부터 꼴등까지 줄 서 있으니까. 스스로 높은 순위권의 사람인 걸 인정하고 같이 즐겁게 살아갔으면 좋았을 텐데, 늘 어리석었다”며 세미를 불쌍히 여겼다.
“열등감을 느낀다는 건 고통이에요. 가장 쓸모없는 감정이 질투심과 열등감이죠. 세상 모든 감정, 시련이나 슬픔도 좋은 거라고 위로하는 편인데 질투심과 열등감은 자신을 파괴해요. 열등감으로 누구 하나 잘 되는 사람이 없잖아요. 인정하거나 포기해서 나만의 좋은 것을 찾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아요. 한 번 사는 인생 100년도 못사는데 나쁜 걸 왜 가져 가야 하나 싶어요”라는 깨달음이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아모르 파티’예요. 내 운명을 사랑하라.”
그러면서도 유인나는 유세미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드라마가 끝난 후 세미는 굉장히 많이 변했고 밝아졌어요. 세미가 참 착하고 바보 같아서 그렇지 결국 송이의 옆에 남아있는 친구가 됐을 거예요. 그 모습만 봐도 안아주고 싶은 사람이죠. 휘경이랑은 깨끗이 정리됐어요. 15년 동안 짝사랑하느라 못 만났던 많은 사람과 연애도 하고, 또 그중 멋있는 사람에게 안착하죠”라며 뒷이야기를 상상하기도 했다.
유인나는 출연작마다 다 성공적이었다. 데뷔작인 2009년 ‘지붕뚫고 하이킥’부터 ‘시크릿가든’ ‘최고의 사랑’ ‘인현왕후의 남자’ ‘별에서 온 그대’까지 승승장구했다.
“너무 감사하죠. 그래도 슬럼프는 온 적이 있었어요”라고 귀띔했다.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타협했어요. 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어요. 눈물이 날 때는 많이 울고, 매일 일기도 써봤고요. 책도 많이 읽었어요. 그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또 아주 큰 세상을 보고 넓은 곳을 보는 게 도움이 됐어요. 키 165㎝에 50㎏이 안 되는 저는 이 세상의 작은 점일 뿐이에요. 거리의 많은 사람을 보며 ‘난 별 것 아니구나’ 싶었죠. 외유내강 인물이 되려고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