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침몰한 천안함에서 살아남은 죄(?)로 A씨는 그 동안 사회적 편견과 비난이라는 또 다른 적과 싸워왔다.
주위 사람들이 걱정했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더 이상 A씨를 괴롭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불을 끄지 않고 방 문을 열어둬야만 잠들 수 있던 힘든 시기도 극복했다.
단 하나, 그를 참을 수 없게 한 것은 천안함이 서해 바다로 가라앉았던 3월26일을 앞두고 매년 반복되는 ‘패잔병’이라는 낙인이었다. 천안함과 관련된 기사에 달린 ‘패잔병’이라는 댓글은 죽은 자를 또 다시 죽이고 기적처럼 살아남은 자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A씨는 “느닷없이 46명의 아들과 친구, 형제를 잃은 비극에 대해 사람들은 너무 쉽게 얘기한다”며 “전우를 잃고 그 날의 공포를 피부로 느낀 우리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왜 패잔병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천안함과 함께 가라앉은 전우들의 몫까지 힘껏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며 “그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패잔병으로 기억돼선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
천안함이 암초에 얹혀 좌초했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A씨는 “당시 당직 근무를 마치고 침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 갑자기 ‘쿵’하는 폭발음이 울리고 그 충격으로 5분 정도 의식을 잃었다”며 “좌초했다면 사전에 이상 징후를 느꼈을 테고 여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암흑 속에서 선체가 90도 가까이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함수 위로 어렵게 올라가 구조를 기다리는 과정에서도 이미 함미는 가라앉아 보이지 않았다. 좌초라면 이 같은 상황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A씨는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천안함과 46명의 용사들이 잊히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A씨는 “천안함 침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대학 선·후배와 친구들이 전화나 문자, 싸이월드로 안부를 묻고 걱정해줬다”며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 중 하나가 주변 사람들이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편집팀 tdh1234@naver.com

2026.10.06(화) 2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