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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대한민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게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안전을 위해 군함을 보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한국·일본·중국·영국·프랑스 등을 직접 거론하며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파견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후 미국의 압박은 계속되고 있고, 최근 우리 정부에서도 호르무즈 해협에 해군 전력을 보내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참으로 난감한 문제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앞에서 한미동맹은 우리 안보의 중요한 축이다. 미국의 안보 지원을 받으면서 미국이 요구하는 국제적 역할을 무조건 외면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군대를 미국의 모든 군사적 요구에 따라 해외 분쟁지역에 보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동맹은 종속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맹국이라면 서로의 안보를 존중하고 협력해야 하지만, 우리 군을 어디에, 어떤 임무로, 어떤 위험을 감수하면서 보낼 것인지는 대한민국이 독자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해상교통로가 아니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상존하는 지역이며, 한번 무력충돌이 확대되면 우리 해군 함정과 장병들이 직접적인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더욱이 우리가 파병한 함정이 공격을 받는다면 문제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때 우리 정부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군사 작전에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장병의 안전을 위해 독자적으로 행동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파병부터 결정해서는 안 된다. 한미동맹은 중요하지만, 우리 군의 최우선 임무는 한반도다.
대한민국 국군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대한민국의 영토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직면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상당한 해군 전력을 중동에 장기간 전개한다면 한반도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부터 면밀하게 따져야 한다. 물론 현재 거론되는 전력이 공격용 전투함이 아니라 군수지원함이나 해상초계기 등 비전투 성격의 전력이라는 점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비전투 임무라고 해서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는 군수지원함과 초계기도 얼마든지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국민에게 솔직하게 설명해야 한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나라다. 중동에서 들어오는 원유와 에너지의 안정적인 수송은 우리 경제와 국민생활에 직결된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거나 항행이 불가능해진다면 국제 유가와 해상운임이 급등하고 우리 경제에도 심각한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파병 여부를 단순히 찬성과 반대로 나누는 것이 아니다.
임무의 성격과 작전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첫째, 우리 해군의 임무는 원칙적으로 상선 보호와 항행 안전, 구조·구난, 기뢰 제거 및 인도적 지원 등에 한정해야 한다. 둘째, 미국의 이란에 대한 공격작전에 우리 군이 직접 참여하는 일은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셋째, 우리 함정이 공격받았을 경우의 교전수칙과 자위권 행사의 범위를 사전에 국민과 국회에 공개해야 한다. 넷째, 파병 기간과 규모를 명확히 하고 무기한 장기 주둔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무엇보다 국회의 충분한 심의와 동의를 거쳐야 한다. 헌법 제60조 2항은 국군의 외국 파견에 대해 국회의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과의 동맹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좋은 동맹은 상대방이 요구하면 무조건 따르는 관계가 아니다. 필요할 때는 함께하고, 필요할 때는 우리의 사정을 설명하고, 대한민국의 국익에 맞지 않는 부분에는 정중하게 거절할 수도 있어야 한다. 오히려 그것이 성숙한 동맹관계다. 미국 역시 대한민국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설명할 수 있는 주권국가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미국에 이렇게 말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자유와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해 책임 있는 역할을 하겠다. 그러나 대한민국 해군을 특정 국가에 대한 공격작전에 참여시키지는 않겠다.” 이것은 미국에 대한 배신이 아니다.오히려 대한민국이 동맹국으로서 자신의 책임과 한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답은 ‘무조건 파병’도 아니고 ‘무조건 거부’도 아니다. 국익을 기준으로 조건을 붙여 참여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법일 수 있다. 호르무즈의 평화와 항행 안전에는 참여하되 전쟁에는 휘말리지 않는 것. 우리 선박과 국민의 안전을 지키되 특정 국가의 군사작전에는 종속되지 않는 것. 한미동맹을 지키되 대한민국의 결정권도 지키는 것. 바로 그 균형이 필요하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대한민국이 보여줘야 할 것은 미국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이 아니다. 동맹을 존중하면서도 국익을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주권국가의 모습이다.지금 대한민국 정부에 필요한 것은 서두르는 용기가 아니다. 국민에게 모든 위험과 비용을 투명하게 설명하고, 국회의 동의를 구하며, 미국과 이란을 비롯한 관련국들과 외교적 공간을 최대한 넓히는 신중하고 당당한 외교다. 우리 해군을 어디로 보낼 것인가는 결국 대한민국이 결정해야 한다.그리고 그 결정의 기준은 미국의 요구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평화, 그리고 국익이어야 한다.

2026.10.05(월) 17:10













